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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
우주를 유영하는 법
소설가 최민석의 제주행
2018.11.16

본문

 

우주를 유영하는 법 

 

제주도가 왜 제주도인가. 바다가 있기 때문이다. 

글 최민석 / 그림 렐리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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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의 달인>이란 프로그램이 있다. 지금은 출중한 요리사를 소개하는 프로그램이 되어버렸지만, 원래는 각종 분야의 달인을 소개했다. 머리 위에 쟁반을 6층 높이로 쌓아 음식 배달하는 사람, 무협 영화처럼 눈을 감은 채 곰 인형 눈을 후다닥 꿰매버리는 사람, 안대를 쓰고 킁킁거리며 냄새로 라면 이름을 맞히는 사람 등, 별의별 사람들이 나오는 프로그램이다. 공통점이 있다면 자신이 몸담은 분야에서 목적을 굉장히 잘 달성해내는 사람들이라는 것이다(라면 냄새를 잘 맡는 사람은 분식집 사장이었다). 그런데 볼 때마다 반대의 가정이 성립되는지 궁금했다. 목적 달성과 정반대 방향으로 뭔가를 잘 하는 사람이 있다면 어떨까, 하고. 왜냐고?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이 소설가이기 때문이다. 그런 탓에 팥을 빼버린 단팥빵을 계속 먹는 사람, 해외여행을 보내주면 한인타운 밖으로 한 발짝도 나가지 않는 사람, 바다를 팔짱 낀 채 바라만 보는 사람들이 나오길 기대했다. 만약 이런 사람들을 출연시킨다면 나도 약간의 자격은 있다. 그간 수차례 제주도를 들락거렸지만 단 한 번도 제주도의 바다에 들어간 적이 없으니까 말이다.

 

국어사전에서 ‘제주도’를 찾으면 한자 2개가 나오는데, 첫 번째가 섬 ‘도’ 자를 쓴 제주도(濟州島)이고, 두 번째가 길 ‘도’ 자를 쓴 제주(濟州道)다. 즉, 제주도는 하나의 행정구역이기 전에 이미 바다 위에 뜬 섬으로서 자신의 존재론적 입장을 명확히 한다. 바다를 뺀 제주는 상상할 수 없고, 제주를 뺀 해변 역시 상상할 수 없는 것이다. 이 지면에 네 계절 동안 제주 탐방기를 쓰기로 했는데, 이번이 제주바다에 몸을 담글 수 있는 마지막 기회였다. 위기감을 느꼈다. 더 이상은 미룰 수 없어 여름의 끝자락인 8월 29일, 협재해변으로 갔다. 성수기의 강렬한 열기가 한풀 꺾여서인지 사람이 많지 않았다. 모래사장 위에 파라솔이 빽빽하게 꽂혀 있었고, 파라솔이 드리운 그늘은 모래 차지였다. 복잡하지 않아 오히려 더 나았다. 햇볕도 세지 않아 상의를 벗고 해변에 드러눕기에 딱 적당했다. 제주의 해수욕장에 오지 않은 과거 나 자신의 뺨이라도 한 대 치고 싶을 정도였다.

 

제주도의 핵심이 해수욕장이라면, 해수욕장의 핵심은 바다 수영 아닌가. 밀려오는 파도를 향해 일직선으로 나아가니 ‘이날을 위해 수영을 배운 건가’ 하는 운명론적 생각마저 들었다. 실내 수영장을 전전하던 나를 제주의 푸른 하늘과 산들바람이 반겨줬다. 숨을 내뱉기 위해 얼굴을 수면 위로 내밀 때마다 비양도가 보였다. 섬 앞에서 바다를 사이에 두고 떠 있는 다른 섬을 보는 기분은, 마치 지구에서 달을 보는 듯했다. 바다가 우주라면, 섬은 별이다. 그렇기에 제주도는 지구가, 비양도는 달이 된다. 나는 지구와 달 사이를 유영하는 우주인이 된다. 유영. 그렇다. 말 그대로 유영하는 것이다. 우주인이 산소호흡기를 달고 있듯이 귀한 산소를 공급받기 위해 유영하는 사이 한 번씩 고개를 내민다. 그러면 또 대기권 아래 있는 구름이 반겨준다바다에서 수영한다는 것은 내가 우주의 일부라는 사실을 느끼게 해주는 일이다.

 

게다가 협재의 파도는 어찌나 잔잔한지 지구의 물이 내 입으로 침범하는 일조차 일어나지 않았다. 바닷물의 영역은 지구 표면이라는 입장을 고수하듯 내 입안을 탐하지 않았다. 나는 이 잔잔하고 고요한 바다 위에서 오래도록 떠다녔다. 부력마저 좋아 큰 힘 들이지 않고도 오래 떠다녔다. 마치 중력이 없는 우주에서처럼. 사해에 가본 적이 없어 비교할 순 없겠지만, 그에 못지않으리란 막연한 확신 같은게 느껴졌다. 그렇다면 염분 함유율이 높다는 말인데, 이 짜디짠 물이 신사답게 차분히 있어주니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협재를 의인화 한다면 실력 좋고 매너 좋고 겸손한 ‘달인’이 어울리지 않을까.

 

만약 <생활의 달인> 자연 특집 편을 꾸린다면, 협재해변이 빠지면 섭섭할 것이다. 거센 파도로 삶에 지친 이들을 힘겹게 하지도 않고, 힘센 팔로 무거운 사람까지 수면 위로 밀어 올려주고, 내면에 가득찬 화 때문에 뜨거워진 모래사장 위를 까치발로 걷게 하지도 않으니까. 협재해수욕장의 매력을 왜 이제야 알았을까. 아니, 이제라도 안 것이 다행인지도 모른다. 일찍이 알았더라면 나는 소설 따위는 쓰지않고 그곳으로 이사 가 매해 여름만 기다리는 사람이 됐을 테니까. 내년 여름이 기다려진다. 유학 간 애인이 여름이 되어 돌아오길 기다리는 심정이라면, 이해가 되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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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민석 에세이를 쓰기 위해 소설가가 되었노라고 고백하며 ‘구라 문학’의 태동을 알린 주인공. 수필 <꽈배기의 맛>, <꽈배기의 멋>, <베를린 일기>와 소설 <능력자> 등을 썼다. 그 좋아하는 제주 막걸리를 더 맛있게 마시기 위해 부러 한라산에 오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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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얼 제주iiin 매거진>, 2018 가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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